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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스 바르바 지음｜엄지영 옮김｜현대문학｜264쪽｜1만4000원

라틴아메리카의 밀림이 뒤덮은 도시에 어느 날 출신을 알 수 없는 아이들 32명이 나타난다. 9~13세 정도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무슨 언어로 말하는지, 밤마다 한꺼번에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한다. 아이들은 가게를 약탈하고 돈을 훔쳐 달아나거나 사람을 다치게 한다. 아이들의 말짓은 폭력으로 점점 커지고, 아열대 지방 특유의 나른한 권태가 흐르던 도시는 혼란에 빠진다. 작은 악마들이 어느 날 한순간에 자취를 감추면서 진짜 문제가 시작된다.

도시에 남은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입을 닫아버린 아이, 밥 먹기를 거부하는 아이, 땅에 귀를 대는 이상행동을 하는 아이 등이 생기면서 도시는 아이들이 떠난 후유증을 앓는다.

사회복지과 공무원인 소설 속 화자가 과거의 끔찍한 사건을 회고하는 방식으로 '어른'과 '아이'의 세계를 탐구한다. 도시는 어른의 공간이고, 밀림은 아이의 공간으로 그려진다. 도시는 '눈에 보이는 세계'이자 '문명'의 영역으로, 밀림은 '알 수 없는 세계'이자 '순수'의 영역으로 대비된다. 순수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약육강식의 자연과 닮아있기에 오히려 죽음이나 공포와 밀접하다. "밀림을 뒤덮은 초록은 진정한 죽음의 빛깔이다. (중략) 그런 밀림 속에서 32명의 아이들은 하나의 공동체로서 인간 고유의 저항력을 증명하며 살아남았다."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1954)처럼 격리된 공간에서 인간의 본성을 탐색하는 작품. 아이들의 세계도 어른들의 것 못지않게 끔찍하며, 두 세계는 영원히 화해할 수 없다는 서늘한 충고를 남긴다. 기고자 : 이기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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