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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동계 올림픽을 취재하러 갔던 베이징에서 러시아 기자와 버스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자글자글한 눈가 주름에 호탕한 목소리를 가진 중년 남성이었다. 그는 "지난 20년 동안 러시아가 나선 국제 대회를 거의 전부 직접 봤다"며 "스포츠 기자의 특권을 누린 셈"이라며 '껄껄' 웃었다. 아마 그 기자는 지금 웃고 있지 못할 것 같다. 러시아 선수를 보러 갈 스포츠 대회가 없기 때문이다.

전 세계 스포츠계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이유로 '러시아 퇴출'에 나서는 중이다. 국제빙상연맹(ISU)은 지난 1일 러시아 선수들의 국제 대회 출전을 무기한 금지했다. 오는 21일 프랑스에서 열리는 피겨스케이팅 세계선수권 대회도 적용된다. 베이징 금메달리스트 안나 셰르바코바가 세계선수권 2연패(連覇)를 위해 흘리던 구슬땀은 물거품이 됐다. 팬들은 아무 입장을 밝히지 않은 셰르바코바 소셜미디어에 눈물을 흘리는 이모티콘을 달았다.

베이징 동계 패럴림픽에 나선 러시아 선수들은 지난 4년을 잃었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3일 러시아 선수단의 동계 패럴림픽 참가를 불허한다고 밝혔다. 베이징에 있던 러시아 선수 71명은 대회 직전 나온 결정에 비행기를 타고 다시 돌아갔다. 앤드루 파슨스 IPC 위원장은 "꿈을 이루지 못하게 된 러시아 선수 개인들에게는 유감"이라며 "그들은 러시아 정부의 피해자들"이라고 했다.

많은 종목에서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다. 농구, 육상, 레슬링, 아이스하키 등에서 러시아 출전 금지 발표가 잇따른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올해 카타르에서 열리는 세계 최대 스포츠 축제 중 하나인 월드컵에서 러시아를 볼 수 없을 거라고 밝혔다. 브라질에서 2015년 귀화해 처음이자 사실상 마지막 월드컵 출전을 꿈꾸고 있던 37세의 노장 골키퍼 길례르미 마리나투는 평생에 한 번뿐인 꿈의 무대에 나설 기회를 잃었다.

제재를 받지 않아 경기에 출전해도 선수들은 죄인처럼 행동한다. 지난달 28일 러시아 펜싱 선수들은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남자 플뢰레 월드컵에서 경기를 치르지 못했다. 상대팀인 우크라이나 선수들이 "가족과 국가가 위험에 처한 상태에서 러시아와 경기할 수 없다"며 기권했기 때문이다. 관중석에선 우크라이나를 향한 응원의 박수가 터져 나왔고, 바로 앞에 있던 러시아 선수들은 고개를 숙였다.

이탈리아 프로축구 세리에A 아탈란타에서 뛰는 러시아 출신 알렉세이 미란추크는 최근 골을 넣고는 축하하러 웃으며 뛰어온 동료들에게 손사래를 쳤다. 팀 동료 중 우크라이나 출신 루슬란 말리노우스키를 의식한 탓이다.

러시아 선수들은 침략 전쟁을 벌인 푸틴 정권 때문에 자신이 흘린 땀을 보상받지 못하고, 경기에 나서도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러시아 정부의 또 다른 피해자들이다. 기고자 : 이영빈 스포츠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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