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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오픈 초청받은 조코비치, 미접종으로 추방당할 신세

남자 테니스 세계 1위 노바크 조코비치(35·세르비아)에게 호주는 특별한 땅이었다.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호주 오픈(2008년)에서 했다. 호주 오픈은 그에게 총 9차례나 트로피를 안겼다. 시즌 첫 메이저 대회를 우승하면 한 해가 술술 풀렸다. 2020년 26연승 무패 행진(US오픈 16강 실격패로 끊겼다)이나 지난해 '커리어 그랜드 슬램' 도전(역시 4개 메이저 중 US오픈만 준우승해 실패)도 호주에서 출발했다. 호주 코트는 2010년대 들어 만개한 조코비치가 로저 페더러(41·스위스)와 라파엘 나달(36·스페인)이 양분하던 남자 테니스 판도를 뒤흔들고 이들과 나란히 '메이저 우승 20회' 챔피언으로 거듭나게 해준 요람이었다.

올해는 다르다. 조코비치가 호주 입국을 거부당했다. 그는 17일 멜버른에서 개막하는 호주 오픈에 참가하기 위해 5일 오후 11시 30분(현지 시각) 멜버른 국제공항에 도착했는데 입국 심사대에서 비자가 취소됐다. 백신 접종 면제의 당위성을 입증할 서류를 제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주 정부는 심장병이나 정신질환자 등 6가지 예외 사유만 백신 미접종을 허용한다. 조코비치는 "반년 전 코로나에 걸렸다 회복해 백신이 필요없다"고 주장할 뿐이었다. 결국 그는 밤새 이민국의 조사를 받았고, 휴대폰도 압수당한 채 무장 경비대가 지키는 조사실에 홀로 갇혀 있다가 날이 밝자 이민국 지시로 공항 인근 호텔로 이동했다. 그는 호주 연방법원에 소송을 냈지만, 현지 언론은 그가 곧 추방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번 사태는 조코비치가 "호주 정부로부터 백신 접종 면제 허가를 받아서 떠난다"고 4일 밝히면서 시작됐다. 조코비치는 질병을 약보다 음식이나 기(氣)치료로 고칠 수 있다고 믿는 대체의학 신봉자로, 코로나 백신도 줄곧 반대해왔다. 2년 전 세르비아에서 '노 마스크' 테니스 대회를 열었다가 본인은 물론 참가자들이 대거 확진됐다. 작년 도쿄 올림픽은 미접종 상태에서 참가했다.

호주 오픈은 선수·코치·자원봉사자 등 2000여 명이 전부 백신을 맞도록 강제했다. 그러나 조코비치가 '특별 허가'로 입국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호주가 특혜 논란으로 뒤집혔다. 호주는 코로나 사태 초기부터 국경을 봉쇄해 해외 거주 자국민도 2년 넘게 고향의 가족을 못 만났다. 접종을 안 받으면 사회 활동이 불가능해 16세 이상 인구의 90%가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쳤다. 그럼에도 최근 오미크론 확산으로 하루 확진자가 7만명을 돌파해 민심이 뒤숭숭하다. 비난이 빗발치자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가 직접 나서서 "규칙은 규칙이다. 조코비치가 면제 자격을 입증 못 하면 즉시 다음 비행기에 태워 돌려보내겠다"고 엄포를 놨다. BBC는 "방역 실패로 지지율이 추락한 모리슨 총리가 5월 호주 총선을 앞두고 조코비치를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분석했다.

조코비치가 말한 '정부 허가'는 무엇일까. 이는 빅토리아 주정부의 허가로, 연방정부 소관인 입국심사와는 관련이 없었다. 경고장은 있었다. 시드니모닝헤럴드는 "지난해 말 그레그 헌트 보건장관이 빅토리아 주정부와 호주테니스협회(TA)에 '조코비치가 면제 허가 기준을 충족 못 한다'는 친서를 보냈다"고 전했다. 그러나 흥행 카드를 포기할 수 없었던 대회 주최 측은 최근 "의료진의 블라인드 심사를 통해 조코비치가 백신 면제 특별 허가를 받았다"고 발표했고, 조코비치는 이 말만 믿고 비행기를 탔다. 빅토리아 주정부는 조코비치 발이 묶이자 "대회 참가를 허용한 것이지 입국심사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라고 발을 뺐다.

조코비치 입국 거부는 외교전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조코비치와 통화한 뒤 수도 베오그라드에 주재하는 호주 대사를 초치해 "세계 최고 테니스 선수에 대한 부당한 대우를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일부 팬들은 멜버른 공항에서 세르비아 국기를 흔들며 "노바크(No-Vax·백신 미접종) 조코비치를 어서 풀어달라"고 시위했다.

조코비치는 호주 오픈 4연패이자 이 대회 통산 10번째 우승, 남자 테니스 역사상 최초 메이저 21번째 우승 등에 도전할 기회를 백신 미접종과 맞바꿨다. 기고자 : 양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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