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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공개 빛과 그림자

지난해 글로벌 증시 랠리에 힘입어 IPO(기업공개) 규모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데이터 제공 업체 레피니티브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2097개 기업이 IPO로 4020억달러(약 476조9330억원)를 조달했다. 2020년보다 증시에 데뷔한 기업 수는 51%, IPO 조달액은 81% 증가한 것이다. 데이터 제공 업체 딜로직은 여기에 스팩(SPAC·기업인수목적회사)까지 포함하면 지난해 IPO 규모가 5940억달러(약 704조7220억원)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폴 고 언스트 앤드 영(EY) 글로벌 IPO 리더는 보고서에서 "2021년은 지난 20년 가운데 IPO 시장이 가장 활발한 한 해였다"며 "경기 회복과 코로나 백신 출시, 정부 부양책에 따른 풍부한 유동성으로 인한 낙관론이 IPO 시장에 강력한 순풍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IPO 호황을 견인한 분야는 기술과 헬스케어였다. 기술 기업(426건)과 헬스케어 기업(332건)이 전체 IPO 모금액의 42%를 차지했다. 지난해 IPO로 가장 많은 금액을 끌어모은 기업은 전기차 업체 '리비안'이다. 120억달러(약 14조2340억원)를 조달하면서 2014년 알리바바(250억달러) 이후 미국 증시 최대 IPO로 기록됐다. 홍콩 증시에 상장한 중국 쇼트폼 동영상 업체 '콰이서우'(54억달러), 미국 나스닥에 데뷔한 한국 '쿠팡'(46억달러) 등이 그 뒤를 이었다.

그러나 역대급 IPO 규모가 무색할 정도로 IPO 이후 기업들이 받아든 성적표는 초라했다. 딜로직에 따르면 지난해 런던, 홍콩, 인도, 뉴욕에서 10억달러(약 1조1860억원) 이상을 조달한 43개 기업 중 절반가량(49%)이 공모가보다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제이 리터 플로리다대 교수는 CNN에 "2021년 IPO 기업들은 첫날 급등 후 평균적으로 시장 수익률을 하회했다"고 말했다.

고개 숙인 기술 성장주

지난해 IPO 열풍의 중심에 있었던 기술 기업들의 성적이 특히 좋지 않았다. 리터 교수는 "많은 기업들이 IPO 당시 가치를 지나치게 높게 평가받았기 때문"이라며 "투자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면 주가가 높을 때 실적을 내야 하지만, 많은 기업은 상장 이후에도 적자를 내고 있다"고 했다.

미 경제 매체 CNBC가 지난해 미국 시장에 상장한 55개 주요 기술 기업을 분석한 결과, 고점 대비 주가가 20% 이상 하락하지 않은 기업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글로벌파운드리스' 단 한 곳뿐이었다. 신종 코로나 팬데믹(대유행) 이후 미국 개미 투자자들의 주식 투자 붐을 일으킨 온라인 주식거래 플랫폼 '로빈후드'는 고점(70.39달러) 대비 주가가 75%나 빠졌다. 지난 6월 뉴욕 증시 상장 당시 44억달러를 조달하며 대박을 터뜨렸던 중국 차량 공유 업체 '디디글로벌' 역시 고점(16.4달러)과 비교해 주가가 70% 하락했다. 로봇 자동화 업체 '유아이패스'(-49%), 외식 산업용 소프트웨어 업체 '토스트'(-47%), 지난해 IPO 최대어 '리비안'(-40%) 등도 고점 대비 큰 폭으로 주가가 떨어졌다. CNBC는 "성장을 위해 추가적인 자금 유입이 필요한 기술 기업들이 인플레이션과 금리 인상 가능성 때문에 큰 타격을 받았다"고 분석했다.

스팩과 합병한 기업들도 실망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지난해 초 과열 양상을 보였던 스팩 투자 열풍은 인플레이션 우려로 증시 변동성이 심해지자 급속하게 얼어붙었다. 스팩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스팩을 통해 상장한 200여 기업 중 75%가 상장가보다 낮은 주가로 거래되고 있다. 이 가운데 40개 기업은 주가가 반 토막이 났다. 온라인 자동차 보험사 '메트로마일'은 스팩 합병 직후였던 지난해 2월 주가가 19.97달러까지 치솟았으나, 지난달 31일 89% 하락한 2.1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투자 회사 레스테 클리어웨이 캐피털의 맥스 울프 파트너는 투자 전문지 배런스에 "그야말로 과열이었다"며 "아무도 상장할 거라고 기대하지 않았던 기업들까지 상장했다"고 말했다.

올해 기대되는 IPO 대어들

올해도 미 증시에는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들이 줄지어 IPO에 나선다. 기업 가치가 390억달러(약 46조2930억원)에 달하는 온라인 신선식품 플랫폼 '인스타카트', 빅데이터 분석 플랫폼 '데이터브릭스'(380억달러), 디지털 은행 '차임'(250억달러), 밈 주식 열풍을 이끈 소셜 미디어 플랫폼 '레딧'(100억달러), 온라인 메신저 '디스코드'(70억달러) 등이 올해 IPO 대어로 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핀테크 유니콘인 '스트라이프'의 상장 여부에도 관심이 쏠린다. 온라인 전자상거래용 결제 플랫폼을 공급하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인 스트라이프의 가치는 950억달러(약 112조7650억원)에 달한다. 스트라이프가 IPO에 나설 경우 2012년 페이스북이 썼던 미국 기업 역대 최대 IPO 기록(160억달러)을 가뿐히 뛰어넘을 것으로 시장은 보고 있다. 다만 지난해 11월 존 콜린슨 스트라이프 공동 창업자는 "상장을 서두르지 않고 있으며, 비상장 기업인 현재 상태에 만족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기준금리 인상 등 각국의 통화정책 변화로 증시 전반이 활력을 잃으면서 IPO 시장이 작년만큼 활성화되기 어려울 것이라 예상한다. 미·중 갈등으로 중국 기업들의 미국 증시 상장이 막힌 것도 IPO 시장에 악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제임스 플레밍 시티그룹 주식자본시장 글로벌 공동대표는 로이터통신에 "2021년은 세계적으로 증시에 있어 특별한 한 해였다"며 "이 같은 일이 금방 되풀이될 것 같지는 않으며, 2022년은 IPO 시장이 침체될 것이라 본다"고 말했다.

[그래픽] 지난해 상장한 주요 기술주 수익률

[그래픽] 르네상스 IPO ETF 주가 추이

[그래픽] 올해 IPO 기대되는 유니콘 기업 기고자 : 신수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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