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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선 안 될 일이었다. 2022년 신춘문예 소설 심사에서 권지예·조경란 작가는 당선작으로 '464번'을 꼽았다. 번호를 대조해 이름과 주소, 휴대전화 번호가 적힌 우편물을 찾았다. 오호라, 임현석씨구나. 남자분이시겠네. 서울 도봉구에 사시고.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감격에 찬 목소리 대신 차가운 기계음이 들려왔다. "지금 거신 번호는 없는 번호입니다."

이런 실수를 할 수도 있나? 도대체 당선작이 될 정도의 작품을 '없는 번호'로 응모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무슨 의도인가. 실존 인물이긴 한 걸까. 당황하긴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였다. "퇴근하는 대로 적힌 주소에 가겠습니다."

씩씩대며 회사를 나섰고, 1시간 걸려 오래된 복도식 아파트에 도착했다. 집 안 불은 켜져 있었다. 세차게 초인종 누르길 여러 번, 답이 없었다. '연락 바랍니다.' 명함에 문구를 쓰고 문틈에 꽂아 넣다가 오기가 뻗쳤다.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가구주 전화 연결을 부탁했다. "개인 정보라서 어렵습니다. 근데, 신춘문예라고 했죠?" "네." "당선된 거예요?" "네." "그럼 도와 드려야지!"

명부에는 여성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일단 전화했다. "임현석씨 아시나요?" "제 친구예요." 드디어 찾았구나. "어디 계시는지 아세요? 여기 아파트까지 왔는데요." 여성은 "지금 현석씨와 함께 있는데, 일하는 중이라 움직일 수 없다고 한다"고 했다. 여성은 걸어서 15분 떨어진 곳에서 서점을 운영한다고 했다. 제대로 된 연락처만 확인하고 귀가하려다가 생각을 바꿔 먹었다. 이렇게 된 이상 이 인간을 반드시 만나겠노라. "제가 갈게요."

서점에서 일하는 신춘문예 소설 당선자라. 꽤나 낭만적이구먼. 그런데 있지도 않은 번호를 적어서 이 엄동설한에 생고생을 시켜? 안도와 기대, 분노와 억울을 오가며 서점에 당도했다. 10평 남짓한 독립 서점에는 문학 책들이 정갈하게 꽂혀 있었다. 당선자는 깊숙한 곳에서 노트북으로 화상 회의를 하고 있었다. 그가 잠시 회의를 끊고 내게로 와 외쳤다. "아, 선배!" 기자들끼린 소속 회사와 상관없이 입사 연도에 따라 선후배로 서로를 부른다. 당선자는 동아일보 기자였다. 오래전 취재 현장에서 통성명까지 했지만, 난 그의 이름과 얼굴을 잊고 있었다.

화상 회의는 외국인 인터뷰였다. 취재를 끝낸 그와 책상을 앞에 두고 앉았다. 그는 오래도록 소설가를 꿈꿨다고 했다. 작가라는 또 다른 정체성을 유지하려 두 번호를 썼는데, 통신비 납부를 깜빡해 번호가 소멸한 걸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당선자 찾았습니다." 스피커폰으로 조경란 작가를 연결했다. 심사자는 "활발하게 활동하셨으면 좋겠다"며 축하와 응원을 건넸고, 당선자는 "꼭 그렇게 하겠다"며 웃었다. 내 눈앞엔 후배 기자가 아닌 이제 시작하는 소설가가 있었다. "멋있네요." 나는 소곤거리며 그의 여자 친구 쪽을 돌아봤는데, 이미 그녀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올해는 기자님이 산타셨어요." 곧 크리스마스였다. 산타 옷처럼 두툼한 녹색 패딩을 여미고 서점을 나섰다. 집까지 1시간 넘게 걸리는 지하철에 앉아 생각했다. '가끔씩 이런 일도 있어야지.' 기고자 : 이기문 문화부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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