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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한 나라만 위험해도 모두 위험해지는 세계 됐다＂

"코로나 팬데믹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인류가 앞으로 맞닥뜨릴 새로운 시대의 출발점일 수 있습니다. 모두가 안전하지 않다면 아무도 안전하지 않은 세상, 그런 새로운 시대로 우리는 진입했습니다. 더 치열하게 대처하지 않으면 위기는 반복될 겁니다."

애덤 투즈 미국 컬럼비아대 역사학과 교수는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코로나 백신을 빠르게 개발하고 선진국 국민들이 대대적으로 백신을 맞았지만 백신 접종률이 낮은 저개발국에서 나타난 새로운 변이가 다시 세계를 휩쓸었다"며 "국가 간 백신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방역은 도박과 다를 바 없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투즈 교수는 세계대전과 대공황, 글로벌 금융 위기 등을 깊이 있게 연구한 글로벌 위기 전문가다. 지난 9월 코로나 팬데믹의 첫 1년을 세세하게 분석한 책 '셧다운(Shutdown·폐쇄)'을 미국에서 냈다. 그는 책에 이렇게 썼다. '인류가 축적한 과학기술의 혜택을 세계 전체로 확장시키지 않는다면 2020년은 점점 통제 불가능해질 연쇄 재난의 첫 사례로 남을 것이다.'

바이러스 앞에선 부자·빈자 모두 평등

―이미 '코로나 이후'를 논하는 이가 많은데, 다른 재앙을 또 대비해야 할까.

"지난 6개월 동안 만난 많은 전문가와 기자는 코로나가 곧 끝난다고 전제하고 대화를 했다. 지난가을 이후 여전히 세계에선 하루에 6000~7000명이 코로나로 목숨을 잃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사람들이 이 사실을 한 귀로 듣고 흘리는가 싶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코로나 백신 접종 이후 선진국에서 코로나 사망자가 감소하니 다 잘 풀릴 것이라는 듯한 이런 인식은 매우 위험하다. 세계의 모든 나라가 바이러스에서 보호받지 않는 한 팬데믹 위험은 사라지지 않는다. 결국 코로나 오미크론 변이가 아프리카에서 나와 다시 확산했고 팬데믹의 끝은 멀어졌다."

―선진국은 백신의 승리를 사실상 선언했다. 너무 일렀나.

"그렇다. 백신 보급은 글로벌 차원에서 보면 충격적일 정도로 실패했다. 백신을 세계 각지에 어떻게 배분하고 접종을 이뤄낼지에 대한 논리 자체가 없었다. 백신을 개발·제조하는 선진국과 나머지 사이에 백신 접종 속도는 엄청나게 차이가 났다. 여전히 백신 접종률은 국가별로 크게 다르다. 그 결과는 처참하다. 결국 접종률이 낮은 나라에서 코로나 변이가 발생해 세계로 번져간다. 오미크론의 치명률이 낮다고 해도, 다음 변이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선진국들은 '다음 변이는 덜 치명적이기를, 백신 두어 번 더 맞으면 다 해결되기를…'이라고 바라는 식으로 생명을 건 도박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 코로나 백신 접종은 2020년 12월 중순에 시작됐다. 이듬해 6월 접종률이 50%를 넘어가며 '코로나 터널의 끝'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즈음 인도에서 출몰한 델타 변이가 다시 세계를 덮쳤다. 당시 인도의 접종률은 5%에 불과했다. 오미크론 변이가 지난해 11월 발원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당시 국민 4명 중 1명만 백신을 맞은 상태였다. 지금도 접종률이 32%에 그친다. 투즈는 "사람들은 여전히 경제 규모로 국가의 중요도를 가늠하는 옛 습성에 젖어 있다. 바이러스를 포함한 자연의 공격은 선진국과 저개발국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제쯤 깨달을까"라고 했다.

글로벌 방역 시스템 구축해야

―선진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변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런 인식이 매우 위험해졌다는 얘기다. 코로나 이전에 이미 인류는 국가 간 이동이 매우 늘어나 감염병 위험이 커진 상태였다. 팬데믹을 경고한 학자도 적지 않았지만 대처는 없다시피 했다. 바이러스의 특성은 인간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바이러스의 눈엔 모든 인간이, 모든 국가가 같다. 선진국과 저개발국, 부자와 가난한 자를 구분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제사회는 저개발국의 경제 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코로나 방역에서도 이 국가들을 소외시켰고 백신 불평등이 심각해졌다. 예전처럼 선진국만 중요하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모두를 평등하게 대하는 죽음이, 바이러스가 이 모든 것을 바꾸었다."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국제사회가 코로나를 포함한 모든 팬데믹에 대비해 효율적인 백신 분배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 아프리카 현지에서 오래 활동해온 조직을 활용하고 투자도 지금보다 훨씬 크게 이뤄져야 한다. 1년 안에 전 세계 모든 사람에게 백신 접종을 완료할 수 있는 방역의 글로벌 인프라(기반 시설) 구축을 하루라도 빨리 시작할 것을 제안한다."

그는 책에서 코로나에 대응했어야 할 핵심 국제 기구인 세계보건기구(WHO)의 역할과 재원(財源)이 너무 약한 문제를 지적했다. WHO의 2년치 예산은 약 60억달러(약 7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서울시 한 해 예산의 5분의 1 수준이다. 투즈는 "지금은 글로벌 방역 시스템이 사실상 없는 상태라 해도 무리가 아니다. WHO 등 보건 관련 국제기구의 예산 및 헬스케어·제약 관련 투자를 지금보다 훨씬 늘려야 한다"고 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가 아니야"

'대격변(The Deluge)'이라는 책에서 1차 세계대전을 분석한 투즈는 코로나 팬데믹을 세계대전에 빗대 설명했다. 그는 "사상자 수만 보면 코로나는 이미 제1차 세계대전에 버금가는 수준의 재앙으로 치닫고 있다"고 했다. 그는 코로나가 처음으로 야기한 큰 변화 중 하나로 인류 최초의 자발적 경제활동 중단을 꼽았다.

―코로나는 경제에 어떤 후유증 남길까.

"지난 수십 년 동안 인류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It's economy, stupid·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선거 구호)'라는 문장에 도취되어 살았다. 매우 거칠면서도 대담한 펀치라인(귀에 쏙 들어오는 말) 역할을 해왔다. 코로나는 한 방에 이 문장을 한물가게 만들어버렸다. 인류는 바이러스의 공격을 받은 후 동시다발적이고 신속하게 경제활동을 희생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2020년 초 대부분 선진국은 방역을 위해 GDP의 20%까지도 희생할 각오를 했다. 여행 등 일부 산업에 종사하는 이들은 '경제성' 같은 단어를 꺼낼 생각조차 못 했다. 방역을 위해선 경제쯤은 얼마든지 미뤄도 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고 '경제가 최고의 가치'라는 개념 자체가 매우 상대적이 되어버렸다. 백신 접종으로 사람들이 일터로 돌아가고는 있지만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는 문구를 신봉하는 이는 거의 사라졌다."

―정부와 중앙은행이 팬데믹 충격을 막겠다는 이유로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의도치 않게 '큰 정부'의 시대가 돌아왔다는 분석도 나오는데.

"20세기 냉전 시대의 잔재인 '큰 정부, 작은 정부' 논의는 유효 기간이 끝났다고 생각한다. 팬데믹 시대에 '제대로 일하는 정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고 해서 중국과 같은 중앙집권적이고 통제적인 사회로 돌아가자는 뜻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 이제 정부의 기능과 역할에 대한 논의는 보다 실용적인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정부·개인 협력 없인 위기 극복 못해

투즈 교수는 팬데믹으로 공공과 민간의 협력, 보다 구체적으론 정부와 지적(知的)인 시민 사이의 협력이 더 공고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팬데믹은 위기 상황에서 정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부각시켰고 동시에 민간과 공공의 경계를 흐리게 만들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코로나 백신은 민간 제약사가 달성했지만, 접종 시스템을 가동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작업은 국가가 맡았다. 미국 등 주요국 정부는 백신을 개발하는 민간 기업에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입하기도 했다. 투즈는 "무조건 '작은 정부'가 낫다는 신자유주의적인 주장이 코로나를 계기로 다소 약해졌다. 민간과 공공 재원의 하이브리드를 뜻하는 '혼합 금융(blended finance)'이란 단어를 앞으로 더 자주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방역을 위해 강력한 정부 통제도 받아들여야 할까.

"코로나 시대의 통제는 매우 특이한 방식으로 이뤄졌다. 정부가 내리는 일련의 조치에 시민이 어느 정도 자발적으로 협력하는 구도였다. 코로나 초기에 정부가 엄청나게 강한 봉쇄 조치를 취한 중국 등 이례적인 사례도 있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코로나 대응은 강압보다는 시민의 협조를 통해 이뤄졌다.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시민의 협조가 없었다면 정부가 아무리 기민하더라도 팬데믹 대응은 거의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부는 유능해야 하지만 지각 있는 시민 개개인의 협조가 없다면 팬데믹 같은 국가적이고 글로벌한 재앙에 맞설 수 없다. 이것이 코로나로 인류가 깨닫게 된 교훈이다."

☞애덤 투즈 교수는

'붕괴' '대격변' 등의 책으로 유명한 글로벌 위기 전문가. 대공황과 세계대전 등을 연구해 위기의 순간에 내려진 인류의 결단과 그 결과 등을 연구해 왔다. 지난해 9월 낸 '셧다운: 코로나는 세계경제를 어떻게 뒤흔들었나'라는 제목의 책에서 코로나 발생부터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취임까지의 1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이 분석했다.

[그래픽] 국가별 코로나 백신 접종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