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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부만 보면 이 땅에 광개토대왕이 재림한 듯하다. 한국은행의 국부(國富) 통계가 있다. 이 재산 목록 가운데 토지 자산은 2020년 기준으로 9679조원, 20년 전에 비해 5배 늘었다. 나라의 토지 자산은 영토를 넓히거나 값을 올리면 늘어난다. 20년 동안 간척으로 늘어난 땅은 국토의 0.9%에 불과하다. 땅값이 토지 자산의 대부분을 늘린 것이다.

남한의 넓이는 일본의 26% 정도다. 남한 땅을 팔아 일본 열도를 살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나. 2019년 말 일본의 토지 자산은 한국 원화로 환산해 1경2501조원이다. 한국이 일본의 77%까지 치솟았다. 과거 10년간 평균 상승률을 적용하면 두 나라의 토지 자산 가치는 3년 뒤인 2025년 역전된다. 남한을 팔면 일본 열도를 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평당 가격은 16년 전 역전됐다. 지금 한국의 땅 한 평은 일본의 땅 세 평 가격이다.

일본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게 얼마나 황당한 일인지 안다. 30여 년 전 도쿄만 팔아도 미국 전체를 살 수 있다고 했다. 1990년 일본의 토지 자산은 2경3653조원에 달했다. 당시 한국의 토지 자산은 일본의 15분의 1 정도로 추정된다. 일본 지방 도시 수준이라고 했다. 거품이 빠졌지만 지금도 일본의 토지 자산은 토지 자산 통계를 내는 OECD 15개 국가 중 1등이다. 2등은 프랑스. 한국이 다음이다. 물론 실현될 수 없는 산술적 비교이지만 이미 한국은 남한을 팔아 호주, 영국, 독일을 살 수 있다. 캐나다는 두 번, 오스트리아는 열 번 살 수 있다. 지정학적 위험 국가가 어쩌다 세계적 땅부자가 됐을까.

'장부상 광개토대왕'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부동산 분야에서 그의 실적은 너무 대단해 토네이도급 투기 광풍이 몰아치지 않으면 그를 넘어설 인물은 나올 수 없다. 문 대통령은 4년 동안 2533조원어치의 토지 자산을 늘렸다. 이명박, 박근혜 두 대통령의 9년 치 실적을 능가한다. 불멸의 기록으로 간주되던 노무현 대통령의 실적을 일찌감치 돌파했다. 문, 노 두 대통령이 9년 동안 늘린 토지 가치는 우리나라 전체 토지 자산의 절반 이상이다. 이들은 무력과 지략으로 영토를 넓힌 일도, 혁명적 국토 개조로 토지의 부가가치를 높인 일도 없다. 몇 가지 시장 교란 정책을 최악의 방식으로 조합해 대기록을 만들어냈다.

일부 사람들은 문 대통령이 어쩌다 대기록을 세웠다고 주장한다. 투기꾼을 잡겠다는 선의(善意)로 최선을 다했지만 부패 기득권 세력의 방해 때문에 뜻하지 않게 한국을 부동산 대국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몰라서 하는 소리다. 문 정권은 거대 토지 자산이 잉태한 황금알을 마다한 적이 없다. 세제까지 고쳐 오히려 짜내고 또 짜냈다.

부동산 자산이 늘어나면 보유세만 늘어나지 않는다. 거래세와 증여상속세 등도 늘어난다. OECD 집계에 따르면 문 정권은 4년 동안 이들 재산 관련 세금을 26조6920억원 늘렸다. 2016년 OECD 36국 중 11위였던 GDP 대비 재산 관련 세금 비율을 2020년 2위로 끌어올렸다. 보유세가 급증한 작년 통계가 나오면 한국의 재산 과세 수준은 캐나다를 누르고 OECD 1위로 올라설 가능성이 높다. 나라를 세계적 땅부자로 만들더니 올린 땅값을 기반으로 세금까지 세계적으로 올렸다. 여기에 빚까지 내 마음껏 썼다. 이런 대통령을 두고 무슨 선의 타령인가.

후계자인 이재명 후보의 간판 정책도 문 정권이 만든 토지 자산에 기반한다. 이름부터가 '토지이익 배당금제'다. 이 후보는 "OECD 평균 부동산 실효세율이 0.8%를 넘는다"고 했다. 집계가 가능한 OECD 15국의 평균 실효세율은 0.29%다. 누구에게 엉뚱한 소리를 들었는지 모르지만, 그의 주장대로 하면 한국 국민은 매년 보유세를 106조원 내야 한다. 작년의 5배다. 문 대통령이 준 살찐 거위의 배를 갈라 황금알을 독점하겠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일본에 대한 경쟁 의식을 자주 드러냈다.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며 일명 '소부장' 운동을 벌이더니 기업인을 모아놓고 성과 보고대회까지 열었다. 기세가 등등해 큰 업적을 세우는가 했다. 그런데 겨우 '부동산 추월'인가.

거품 붕괴 직전 일본 비금융 자산에서 차지하는 부동산 자산 비율은 80% 정도였다. 지금 57%까지 무너졌다. 이게 정상이다. 이 조정 기간을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이 비율을 2020년 77%까지 끌어올렸다. 한국의 경제 체력이 당시 일본보다 강하다는 지표를 찾아내기 어렵다. 부동산 붕괴 때 국민 다수를 나락으로 내몰 개인 부채 등 위험 요소만 가득하다. 문 대통령은 당장 터져도 이상하지 않은 폭탄을 국민에게 내던지고 청와대를 떠나는 것이다. 기고자 : 선우정 논설위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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