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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국가들·러시아, 경제 카드로 치고받아

미국·유럽 등의 자유 진영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보여주는 단합은 "2001년 9·11 테러 이래 최강"(US뉴스)이란 평가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강력한 경제제재는 전쟁이 몰고 온 직접적 충격파와 함께 그 자체로 세계 경제에 대형 악재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러시아에 대한 압력 요인도 되지만 글로벌 경제에도 타격을 주는 양날의 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일(현지 시각) "서방이 러시아와의 군사 충돌을 배제하고 화력을 경제제재에 집중하면서, 세계가 값비싼 경제적 대가를 치르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유럽중앙은행은 지난 1일(현지 시각) 러시아 최대 민간 은행인 스베르방크의 유럽 지사 폐쇄를 의결했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러시아 자산을 팔고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했다. 러시아 침공 직후부터 미국과 유럽이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 망에서 러시아를 퇴출시키고 첨단 제품 수출을 금지하는 등 금융·산업 전반을 압박하는 조치들이 매일 쏟아지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도 제재에 동참하고 있다. 애플과 엑손모빌, 포드와 보잉 등 미 대기업들은 러시아 내 사업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유럽 정유 업체들은 이날부터 러시아 원유 수입을 중단했다. 앞서 인텔과 엔비디아, AMD 같은 반도체 기업들과 물류 회사인 UPS와 페덱스도 러시아 수출·배송을 중단했다.

이런 전략은 당장 러시아 손발을 묶는 효과가 크지만, 글로벌 원자재 값 폭등으로 인해 각국에 경제·정치적 위기를 안길 우려가 크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경제 규모를 다 합쳐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2%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러시아는 원유·천연가스·석탄·금속의 최대 공급국 중 하나다. 우크라이나도 밀·옥수수 등 곡물의 주산지로 러시아와 함께 세계 밀 수출의 30%를, 식용유인 해바라기 오일 수출의 80%를 담당한다. 에너지와 식량으로 세계를 뒤흔들기에 충분하다.

이날 국제 유가가 100달러를 뚫은 것은 전날 캐나다가 서방 국가 최초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 비슷한 조치가 서방 전반에 퍼질 수 있다는 우려가 퍼졌기 때문이다. 미국과 한국 등 국제에너지기구(IEA) 회원국들은 시장 안정을 위해 이날 전략비축유 6000만배럴을 방출키로 했지만 실질적 효과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또 독일이 러시아 천연가스 수송관인 노르트스트림2 승인을 중단하는 조치를 내리면서, 유럽 천연가스 선물 가격 역시 러시아 침공이 시작된 이래 70% 급등했다. 1년 전 메가와트시(MWh)당 16유로에 불과했던 유럽 가스는 현재 120유로가 넘는다.

푸틴이 취약한 서방의 에너지 안보를 노려 우크라이나 침공을 단행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푸틴은 바이든 미 대통령이 가뜩이나 인플레로 지지율이 하락한 상황에서,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상황을 악화시킬 패(러시아 에너지 금수)를 꺼내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며 원자재를 볼모로 잡고 있다고 했다.

유가 100달러 시대가 닥치면서 세계 성장률도 하향 조정되고 있다. 무디스 애널리틱스는 "유가 때문에 미 2분기 성장률이 0.1%포인트, 3분기 0.5%포인트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영국 옥스퍼드 이코노믹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전 세계 성장률 전망치를 4.0%에서 3.8%로 내렸다.

한편, 서방의 강력한 제재로 궁지에 몰린 러시아가 외국인 투자자의 러시아 내 자산 회수를 제한하는 극단적 조처를 하기로 했다. 수십 년간 러시아에서 사업해온 글로벌 기업의 탈출이 이어지자 대규모 자본 유출을 막기 위해 나선 것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 정부는 외국인 투자자의 러시아 자산 매각을 일시적으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러시아 루블화 가치는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러시아 중앙은행은 지난달 28일 기준금리를 9.5%에서 20%로 인상했다. 러시아 정부는 국부펀드 자금 1조루블(약 11조원)을 투입해 자국 기업 주식 매입에도 나설 방침이다.

이날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만달러(약 1200만원)를 초과하는 외화의 국외 반출을 금지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그래픽]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배럴당 가격 / 유럽 천연가스 메가와트시당 가격

[그래픽] 글로벌 자원 공급률 기고자 : 뉴욕=정시행 특파원 백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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