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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디션 프로그램 애청자다. 경쟁을 증오하면서도, 대놓고 경쟁을 부추기는 TV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보통의 삶에서 경쟁이란 어떠한 목적을 위한 관문이라면, 오디션 프로그램 속 경쟁이란 목적 그 자체다. 물론 우승을 차지하려 경합을 벌이는 것이지만 그 자체가 가수 제시의 말마따나 'This is competition!(이건 경쟁이라고!)'인 것이다.

랩 오디션 '쇼미더머니'에 출연하는 나를 종종 상상한다. 다른 오디션인 '슈퍼밴드' '싱어게인' '스트릿 우먼 파이터'에도. 그리고 중학생 때 한 달 동안 드럼을 배우며 내가 박치라는 자명한 사실을 깨달은 기억을 떠올린다. 그 무렵 가창 시험은 쉬는 시간에 나 혼자 따로 볼 정도로 저질스러운 실력을 자랑했다. 무용 수행평가는 나 혼자 엉망진창으로 무대를 휘저은 덕에 조 전체 점수가 깎여야 했다. 나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이루어질 수 없는 로망 같은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 나를 비롯한 수많은 청춘이 이토록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게 된 것일까. 다양한 참가자 중 누구에게라도 자신의 경험을 비추어 보지 않기란 어렵다. 어설프지만 열정만은 가득한 참가자에게 나를 투사하는 것이다. 경합이 진행될수록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응원하게 된다. 대개 그런 참가자는 중간쯤에서 탈락한다. 압도적인 실력을 갖춘 참가자가, 혹은 인지도가 더 높은 참가자가 존재하므로. 내가 응원하는 참가자가 우승하지 못할 것을 알면서도 나는 응원한다. 그가 발전하는 과정 자체가 주는 위안이 나에겐 곧 동력이다.

오디션 참가자들은 대중에게 사랑받고자 열렬히 노력한다. 나와 닮은 모습이다. 자신이 응원하는 참가자가 단계를 거듭할수록 대리 만족을 느끼는 청춘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무대의 주인공이 되는 상상을 해볼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왜 쇼미더포엠이나 슈퍼시인, 시어게인, 스트릿 문학 파이터 같은 프로그램은 없지? 생각하면서. 물론 이유는 알고 있다. 재미없을 테니까. 재미없게도 우리는 이미 우리 삶의 주인공이다. 그건 가장 불행하고도 달콤한 위안이다.

※1월 일사일언은 고선경씨를 비롯해 김재민 NEW 영화사업부 대표,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 이보현 '귀촌하는 법' 저자, 공희정 드라마 평론가가 번갈아 집필합니다. 기고자 : 고선경 2022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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