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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인천강」과 「달이 천강에」와 「달이 즈믄 가람에」 중에서 어느 것이 가장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아름다운가. 셋은 같은 뜻을 지닌 말이다.

「월인천강」은 한자로 월인천강으로 적는다. 「즈믄」은 「천(천)」이라는 뜻의 고유어다. 이 말을 거의 사용하지 않아 지금은 죽은 말 신세가 되었다. 「백(백)」이라는 한자어가 「온」이라는 고유어를 짓밟아버린 것이나, 「강(강)」이 「가람」을 밀어낸 사정과 같다.

한자어의 위세에 눌려 고유어가 죽은 말로 된 것은 수없이 많다. 그 많은 고유어는 대부분 한자어보다 매끄럽고 부드럽고 아름답다. 그것을 되살려 사용하는 일은 「국민학교」를 「초등학교」로 명칭을 바꾸는 일만큼 중요하다. 「불고기집」이 「가든」으로 바뀌어 가는데서 알수 있듯이 외국어의 위세가 한국어를 짓누르는 오늘날 더욱 강조해야 할 문제다.

한자어를 한자로 쓰지 않고 한글로 적는다고 한국어의 당당하고 아름다운 면목이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외국어를 발음대로 한글로 바꿔놓는 것과 다를 바 없다. 한자어에 짓밟혀 무참히 사라져 간 한국어를 찾아 그것을 갈고 닦고 가다듬는 것이 한국어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일이다.

한자어가 최상의 덕목이고 위세 당당하던 조선시대에도 이 점을 꿰뚫어 판독한 사람이 있었다. 김만중은 17세기말 「서포만필」에서 자기 나라 말로 쓰지 않은 시와 문장은 앵무새가 사람의 말을 흉내내는 것과 다름없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말을 갈고 닦고 가다듬어 쓴 송강 정철의 가사를 격찬하여 「동방(동방)의 이소(이소)」 「좌해(좌해)의 진문장(진문장)」이라 했다.

말과 글을 한마디로 하면 언어다. 언어를 「존재의 집」이라고 한 사람도 있고, 「언어가 이데올로기」라고 말한 사람도 있다. 고유어의 아름다움을 되살리고 복원시키는 일은 한국인 존재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언어를 다루는 시인과 작가, 문필인 그리고 대중매체가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올해는 문학의 해이기도 하다. <문학평론가·동국대교수>

◇필진이 바뀝니다 . 이달에는 ▲유득환(섬유산업연합회부회장) ▲조성용(건축가ㆍ도시건축대표) ▲안혜숙(소설가) ▲김민성(mtm대표) ▲김선학씨가 맡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