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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가 두목이 중간보스들을 앞에 놓고 거만한 자세로 앉아있다. 라디오에서는 음울한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두목은 마침내 조금 쉰듯한 목소리로 천천히 입술을 뗀다.

"그가 왜 죽게 됐는지 아나. 그 녀석은 아무것도 훔치지 않았어. 그러나 내가 불렀을때 오지 않겠다고 버텼지. 그게 전부야. "

영화 대부 의 주인공 말론 브란도,또는 언터처블 에 출연했던 로버트 드니로가 내뱉었음직한 대사내용이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 상황이다. 요즘 뉴욕 브루클린에서 살인 및 공갈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주먹세계의 거물 존 고티가 그 주인공이다. 그리고 문제의 장면은 검찰측이 증거물로 압수한 녹음테이프에서 따온 것이다.

지금 미국 할리우드에서는 닭이 먼저냐,달걀이 먼저냐 를 연상시키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에서 두목으로 출연한 영화배우,그리고 뉴욕 뒷골목에서 마피아를 움직이고 있는 실존인물,과연 누가 누구를 흉내낸 것이냐는 의문이다.

주먹세계 이야기가 영화의 한 장르로 자리잡게 된것은 제임스 케그니가 20년대를 풍미했던 시카고갱 두목역을 맡아 열연하면서부터. 이후 반세기가 넘는 기간동안 갱영화와 실제암흑가 사이에는 많은 교감이 이루어져 왔다. 특히 최근 워렌 비티주연의 갱영화 벅시 가 아카데미상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면서 부질없는 논쟁의 흥미를 더 해주고 있다. 벅시는 조지 래프트나 캐리 그랜트같은 액션스타들이 자신의 모델로 설정했던 실존인물이다.

얼마전 미국에선 살바토르 로카치오라는 암흑가 중간보스가 재판을 받았다. 재판장이 피고측 변호사의 자격을 박탈하자 로카치오는 불같이 화를 냈다. "여기는 미국이다. 저들은 권리장전이 있다는 말도 못들어본 모양이지. " 재판정의 대리석 복도를 가로질러 가며 살바토르는 벽을 가리켰다. "우리나라엔 권리장전이 있어. 바로 저 벽에 걸려있지 않나. 저들에게 한번 읽어 보라고 해. "

이 실제상황은 지난 59년 상영된 영화 알 카포네 의 한 장면과 비교해 볼만하다. 이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로드 스타이거가 다음과 같이 외치는 대목이 있다. "이 나라에는 헌법이 있어. 헌법,들어본적이나 있나. 사무실에 가거든 한번 읽어 보라구. "

헨리 힐은 그의 무용담이 영리한자들 이라는 저서로 출판됐을 정도로 명성을 날린 주먹 이다. 힐은 30년전 존 고티를 처음 만났던 당시를 이렇게 회고하고 있다. "고티는 포커판에 앉아있다가,느닷없이 옆사람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주변이 피바다로 변했다. 고티는 아직 애송이였고,거기엔 두목급이 많았지만 아무도 그를 말리지 않았다. "

영화 굿펠라스 에도 비슷한 장면이 있다. 카드게임 신에 출연한 조 페치는 갑자기 젊은 웨이터에게 총을 쏜다.

영화와 현실간의 놀라운 유사성은 어느쪽이 먼저냐 는 질문을 불러 일으킨다.

영화쪽이 흉내쟁이 라는 분석이 일반적이고,또 여러가지 실례가 있다. 영화 갱과의 결혼 의 작가 마크 번스는 86년 고티의 재판광경을 지켜보면서 주인공 토니 루소역을 구상했다고 말했다. 로버트드니로는 굿펠라스 에 출연할 당시 헨리 힐과 하루에도 7-8차례씩 통화했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의 모습을 영화에 빌려줬던 힐은 "암흑가 신출내기들은 갱영화를 보며 의상,매너 등을 가꾼다"며 자기 자신도 영화 비열한 거리 를 다섯번이나 봤다고 말하고 있다. <김창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