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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행 비행기에는 재떨이가 있었다. 2001년이었다. 대부분의 항공사들이 금연 정책을 실시했지만 러시아 국영항공사 아에로플로트는 그럴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애연가인 나는 쾌재를 불렀다. 한반도를 내려다보며 피우는 담배는 기가 막히게 맛이 있었다. 러시아로 여행을 가는 한국인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기내는 러시아 동무들로 가득했다. 하나같이 골초였다. 다시 오지 않을 인생 최고의 비행이 되겠군. 기쁜 마음으로 다섯 번째 담배를 피운 뒤 잠을 청했다.

시베리아 어디쯤을 날고 있을 때 나는 기침을 쏟아내며 깨어났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비행기 속은 연기로 가득했다. 러시아인들은 여전히 쑥뜸을 집어삼킨 곰처럼 연기를 뿜고 있었다.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나는 그 순간 깨달았다. 지상 3만5000피트에서 10시간을 갇힌 채 담배 연기를 버텨내는 건 생각만큼 로맨틱한 일이 아니었다. 미래는 금연이었다. 나는 과거에 갇힌 채 날고 있었다.

모스크바는 웅장했다. 그렇게 거만한 과거의 위용으로 사람을 압도하는 도시는 처음이었다. 함께 여행한 러시아 친구의 가족은 체첸 테러리스트의 타깃이 되어 수백 명이 사망한 아파트 단지에 살았다. 전형적인 중산층이었다. 사랑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새 러시아를 증오했다. 소련을 그리워했다. "러시아는 마피아와 유대인의 나라가 됐다"고도 했다. 주정뱅이 다음으로 리더가 된 남자가 일을 잘할 거라고 했다. 나는 러시아 정치는 잘 모르지만 좋은 대통령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과거의 그림자 같은 그는 20년째 같은 자리에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삼일째 되는 날 오랫동안 연락이 뜸했던 러시아 친구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찾았다. 러시아 문자로 쓰인 글이 자동번역되자마자 나는 창을 닫아버렸다. 자동번역은 엉성했지만 대충 의미는 알 수 있었다. 위대한 러시아에 바치는 기도였다. '위대한 러시아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있을 것'이라는 댓글을 달려다 그만두기로 했다. 참, 아에로플로트는 2002년부터야 기내 금연 정책을 시작했다. 지구상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기어이 기내 흡연을 허락한 항공사였다. 기고자 : 김도훈 문화 칼럼니스트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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