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셰익스피어 원작의 창극 '리어'
17일 개막, 김준수·유태평양 주연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에서도 최고령 주인공이 등장하는 작품이 '리어왕'이다. 딸들에게 배반당해 왕국을 잃고, 정신을 잃고, 마지막에는 생명마저 위태로운 노왕(老王)의 절규가 무대를 채운다. 하지만 반대로 이번엔 젊은 리어왕이 뜬다. 17~27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공연하는 국립창극단의 창극 '리어'. 신세대 국악 스타인 김준수(30)가 리어왕 역, '국악 신동' 출신의 소리꾼 유태평양(29)이 신하 글로스터 백작 역을 각각 맡았다.

'노년의 햄릿'이 가능하다면, '청춘의 리어'도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일종의 역발상이다. 지난해 영국에서는 영화 '반지의 제왕' 시리즈에서 마법사 간달프로 기억되는 영국 배우 이언 매켈런(82)이 햄릿 역을 맡아서 화제를 모았다. 리어 역의 김준수는 "연극계에서도 연륜 있는 대가(大家)들이 맡는 역을 어떻게 소화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질문이 준비하는 내내 가시질 않았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첫 연습 때는 등이 굽었고, 목소리에도 잔뜩 힘이 들어갔다. 그때 연출가 정영두가 그를 멈춰 세우고 말했다. "네가 리어를 따라가려고 하지 말고, 너의 연기에서 자연스럽게 리어가 보일 수 있게 행동하라"고. 23일 간담회에서 정영두는 "무대에서 관객의 마음이 동하게 되면 그 배우의 나이를 잊어버리는 순간이 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유태평양은 '리어왕'과의 첫 만남이 악연에 가까웠다고 했다. 앞니가 빠져 발음이 새던 여섯 살 때 판소리 '흥보가'를 완창해서 국악계를 놀라게 했던 신동. 하지만 변성기가 찾아올 무렵인 13세에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훌쩍 유학을 떠났다. 그는 "3년간 케이프타운에서 공부하면서 재즈와 월드뮤직, 전자댄스음악(EDM)까지 다양한 음악의 매력에 눈을 떴다"고 했다.

영어 고전을 공부했던 남아공 학교에서 만났던 셰익스피어 작품이 '햄릿'과 '리어왕'이었다. 그는 "한국어판으로 읽어도 쉽지 않은 걸, 낯선 영어 고어로 읽으려니 괜히 셰익스피어가 미웠다"며 웃었다. 하지만 소리꾼들은 셰익스피어에서도 판소리 주인공의 모습을 찾아낸다. 유태평양은 "가족에게 버림받고 눈이 멀거나 정신이 혼미해진 등장 인물들의 비극을 한국적 정서로 표현할 길을 고민하다가 딸과 헤어진 심 봉사의 슬픔을 떠올렸다"고 말했다.

이들은 '불후의 명곡' 같은 TV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친숙한 국악계 스타들. 한(恨) 맺힌 국악 창법에 록의 시원한 샤우팅을 버무린 윤복희의 '여러분'(유태평양), 빅뱅의 '뱅뱅뱅'에 절묘하게 녹여 넣은 '수궁가'(김준수)가 이들의 솜씨다. '국악계의 아이돌' '스타 소리꾼'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전통과 현대, 국악과 퓨전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들의 마지막 욕심은 언제나 판소리 완창이다. 유태평양은 '흥보가 '수궁가' '심청가'를 이미 완창했고, 김준수도 '수궁가' 완창 공연에 음원까지 내놓았다. "매년 새해 다짐이 다이어트와 판소리 완창"(유태평양) "마흔 이전까지 판소리 다섯 바탕을 모두 완창하는 것이 꿈"(김준수)이라고 했다.

이번 창극 '리어'에서는 극작가 배삼식이 극본을 새로 집필했다. 지난해 이해랑연극상 수상자인 무대미술가 이태섭은 달오름극장 무대에 총 20t의 물을 채워서 수면의 높낮이와 흐름에 따라서 인물 내면 정서를 드러낸다. 한승석 중앙대 교수가 작창(作唱), 영화 '기생충'과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음악감독 정재일이 작곡을 맡았다. 기고자 : 김성현 기자
본문자수 : 1710
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웹편집 :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