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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블화 가치 하락, 超인플레 우려
안전자산인 달러·금 확보 나서고… 식수 등 생필품 닥치는대로 구입
지난달 24일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일주일이 지나기도 전에 러시아 국민의 일상이 큰 타격을 입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이 합심해 러시아 경제의 손발을 묶는 강도 높은 제재를 가하면서 '고난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전자제품 생산이나 수입에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여 컴퓨터나 가전제품 가격이 치솟고 있다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인텔·엔비디아·AMD와 같은 세계적인 반도체 기업들이 제재에 동참해 러시아 수출을 중단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일간 가디언은 "아이폰 가격이 곧 오를 것으로 보여 사두고 싶다"는 전자제품 매장 직원의 말을 전했다. 글로벌 물류회사인 UPS와 페덱스가 러시아로 배송 서비스를 중단한 것도 불편을 가져올 전망이다.
무엇보다 루블화 가치가 땅에 떨어져 러시아인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초·중순 루블화 값은 달러당 75루블 안팎이었다. 하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환율이 급등(루블화 가치 하락)하기 시작하더니 미국·EU가 러시아를 '은행간 국제 결제망(SWIFT·스위프트)'에서 퇴출시킨다고 발표한 28일에는 한때 119루블까지 올랐다. 보름 사이 루블화 가치가 40% 넘게 폭락해 역대 최저 수준으로 추락한 것이다.
러시아 시중은행들이 서방 제재 리스트에 오르면서 은행 계좌에 연동된 애플페이나 구글페이가 일부 작동하지 않았다. 50대 남성 시소예프씨는 AFP통신 인터뷰에서 "러시아인 90%는 재산을 달러나 금으로 바꾸려고 서두를 것"이라며 "우크라이나 공격에 따른 대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치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실제로 28일 모스크바 시내의 ATM(현금자동입출금기)이나 환전소마다 이른 아침부터 시민들이 길게 줄을 섰다. 루블화 대신 달러를 구하려는 경쟁이 벌어져 뱅크런(현금 대량 인출 사태)이 현실화된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달러 사재기로 대혼란이 벌어지자 달러를 추가로 풀어놓기 위한 강압적인 조치를 내놨다. 무역업자가 외화 수입을 올리면 그중 80% 이상을 사흘 이내에 팔아야 한다는 특별조치를 발동시켰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연 9.5%에서 20%로 올리는 극약 처방을 했다. 환율 방어와 자본 유출 방지를 위해서다. 러시아 정부는 주식시장을 이번 주 내내 개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는데, 이것 역시 전례를 찾기 어려운 조치다. 투자자들이 '패닉셀(공포 매도)'을 할까 봐 겁내기 때문이다.
초인플레이션이 다가온다는 경고도 나온다. 러시아는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4개월 연속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8%대를 기록하고 있는데,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경제 제재에 따른 재정 악화로 러시아가 디폴트(대외 채무 불이행) 사태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국채 가격도 폭락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다르면 지난달 28일 2047년 만기 달러 표시 러시아 국채 가격은 전일 대비 50% 급락했다.
심각한 불황을 피하기 어려운 데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에서 승전고를 울리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에 푸틴의 지지율이 급락할 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물가가 급격하게 오르면 연금 생활자들의 불만이 커지게 마련이다. 뉴욕타임스는 "서방의 전방위 제재로 인한 충격이 커지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둘러싼 러시아인들의 불만이 커질 것"이라고 했다.
서방이 '돈'을 무기로 압박하는 수위는 점점 거세지고 있어 러시아가 수렁에서 빠져나오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연기금인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러시아 투자를 중단하고 기존 러시아 자산을 팔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1일 푸틴 대통령 등 러시아 정부 고위 관계자 6명의 자산을 동결하는 조치를 발표했다.
[그래픽] 러시아 중앙은행 기준금리 / 달러화 대비 루블화 환율 기고자 : 손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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