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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챠 - 스테이션 일레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치명적인 '조지안 플루' 유행으로 인류는 99.99%가 사멸했다. HBO맥스 드라마 '스테이션 일레븐'은 종말 이후에 극소수만 살아남은 미국에서 셰익스피어 연극을 공연하며 떠도는 유랑극단과, '햄릿'을 연기하는 꿋꿋한 여자 키어스턴(매켄지 데이비스)의 이야기를 따라간다.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지켜가려는 사람, 과거의 문명에 집착하는 사람, 종말 이후 태어난 아이들로 신세계를 건설하려는 사람이 충돌하고, 소년 소녀들은 "과거는 이제 없다"며 몸에 두른 폭탄을 터뜨린다. 키어스턴이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그래픽노블 '스테이션 일레븐'의 이야기가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세계는 소용돌이친다.

종말 이전을 가리키는 기억들이 끊임없이 현실과 교차하며 명멸한다. 세상은 무너졌지만 사람은 변하지 않았다. 변하지 않은 사람의 본성이 툭툭 터지듯 발현될 때마다 쪼그라든 세상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이 드라마는 많은 인류 종말 서사가 빠져들었던 '세상 끝의 참상을 더 참혹하게 전시하고 싶은 유혹'을 통쾌하게 배반한다. 비뚤어진 집착과 열정은 왜 쉽게 전염되는지, 고통과 트라우마를 이겨내게 해줄 믿음은 가능한 것인지, 도덕률을 지탱하던 사회가 무너졌을 때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 질문한다.

'블레이드 러너 2049', '터미네이터: 다크 페이트'에서 눈여겨봤다면, 희뿌연 공허 속에서 실낱 같은 희망을 향해 번뜩이는 매켄지 데이비스의 눈빛에 마음이 머물 것이다.

영화 - 더 배트맨

'박쥐 인간'이 돌아왔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와 '테넷'의 영국 배우 로버트 패틴슨(35)이 1일 개봉하는 영화 '더 배트맨'에서 새로운 배트맨 역을 맡았다. 이번에는 도시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고담시(市)의 구조적 부패 속에서 일어나는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역할이다. '혹성탈출' 등 예전 시리즈를 되살리는 재가동 전문으로 명성이 높은 맷 리브스 감독이 각본과 연출을 맡았다. 암울한 누아르 영화의 탐정처럼 배트맨을 묘사한 착상은 신선하지만, 3시간에 이르는 상영 시간은 다소 부담이 될 수도 있다.

클래식-피가로의 결혼

경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지휘자 마시모 자네티·사진)가 3일 오후 7시30분, 5일 오후 5시 두 차례 수원 경기아트센터 대극장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을 공연한다. 2019년 '돈 조반니' 이후 두 번째 공연하는 모차르트 오페라 작품이다. 콘서트 형식의 오페라가 보통 무대와 소품, 의상 없이 진행하는 반면, 이번에는 오케스트라가 악단석(pit)으로 내려가고 무대와 의상을 갖춰서 볼거리를 더한다. 베이스 손혜수가 피가로, 소프라노 박하나와 이정혜가 수잔나와 백작 부인 역을 각각 맡는다.

연극 - 휴식하는 무늬

산후우울증 치료를 핑계로 한 여인이 감금된다. 그런데 방 안의 벽지 무늬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샬럿 퍼킨스 길먼이 지은 소설 '누런 벽지'를 무대로 옮긴 이 연극은 벽지를 넘어 소통하는 사람을 통해 현대 여성을 억압하는 세상을 보여준다. 지난해 '우리가 사랑한 영미 고전'을 기획한 산울림 고전극장이 그중 반응이 좋았던 '동물농장'에 이어 '휴식하는 무늬'를 앙코르 공연한다. '누런 벽지'의 주인공 로즈(김예별)와 현재를 살아가는 청미(김양희)의 이야기가 교차된다. 연지아 각색·연출로 2~6일 산울림소극장.

뮤지컬-노트르담 드 파리

노트르담 성당의 종지기 콰지모도와 집시 에스메랄다가 주인공이다. 대사 없이 노래(54곡)와 춤, 애크러배틱으로 이야기를 굴리는 프랑스 뮤지컬. 벽에 매달리고 바닥을 뒹구는 배우들을 보여주는 첫 장면부터 파격적이다. 비우는 쪽을 선택한 무대는 중간막을 자주 내려 이면(裏面)과 깊이를 만들고, 그 공간을 54곡의 노래와 상징적인 움직임으로 채운다. '대성당의 시대' '광인들의 교황' '춤을 춰요 에스메랄다' 같은 노래들은 전염성이 강하고, 울타리나 종을 이용한 춤과 시각 연출은 잔상이 길다. 13일까지 블루스퀘어. 기고자 : 이태훈 기자
장르 : 고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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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그림/사진 유무 :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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