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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서 명성황후 연기

가창력과 연기력에 티켓 파워까지 가진 여배우는 매우 드물다. 지난 1월 한국뮤지컬어워즈 여우주연상을 차지한 차지연(40)은 옥주현과 함께 한국 뮤지컬 시장의 투톱이다. '복면가왕' 여성 첫 5연승, 드라마 '모범택시'로도 친숙한 얼굴. 워킹맘 차지연은 일하러 나갈 때 아들(6)에게 "사냥하고 올게"라고 말한다. 이번 사냥감은 명성황후. 5일부터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를 공연한다.

"2013년 초연부터 참여했으니 이번이 네 번째예요. 움직임과 감정을 제가 처음부터 만든 뮤지컬은 흔하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얼굴 1895'은 장면마다 그런 흔적이 배어 있어요. 책을 다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걸 발견하듯이 명성황후를 다른 각도로 바라보는 중이에요."

서울예술단의 대표작 '잃어버린 얼굴 1895'는 명성황후가 사진을 남기지 않았다는 점에 착안한 팩션 사극이다. 임오군란 때 장호원으로 피란 온 왕비(차지연)의 신분을 모른 채 내뱉은 험담으로 휘(윤태호)는 가족을 잃는다. 그는 왕실 사진사로 들어가 복수를 꿈꾸지만, 정혼녀 선화(이혜수)는 궁녀가 돼 왕비를 이해하고 보듬는다. 한편 왕비 암살을 위해 사진이 필요한 일본인들은 휘에게 접근한다.

차지연이 가장 애착을 가진 노래는 '괜찮아'였다. 왕비가 피바다를 만든 뒤 장호원 사람들이 부르는 합창인데 "생각도 할 수 없는가/ 부정도 할 수 없는가~"로 흘러간다. "멜로디와 가사가 훅 치고 들어와요. 그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토해내고 있는 말 아닐까 생각해요. 명성황후 노래 중엔 마지막 곡 '여기는 어디인가?'가 좋고요."

이 배우는 "살면서 한이 많이 쌓였는데 감사하게도 무대에서 풀고 있다"고 말했다. 국악인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부친의 사업이 망하고 나선 호객 알바까지 하면서 닥치는 대로 돈을 벌어야 했다. 뮤지컬 출연료를 가불해 빚을 갚을 만큼 20대는 곤궁했다. 차지연은 "명성황후를 연기할 때도 제 밑바닥 아픔까지 뽑아낸다. '으어어어~' 하는 배역을 하도 많이 맡아서, 기쁜 노래를 불러도 슬프게 들린다는 게 단점"이라며 웃었다.

연출가 이지나는 차지연을 '외강내유유유 배우'라고 부른다. 다 잡아먹을 것처럼 생겼는데 겁이 많다는 애정 섞인 농담이다. 차지연은 "처음에 '잃어버린 얼굴 1895' 대본을 읽었을 땐 계속 강펀치를 맞는 기분이라 무서워서 거절했다"며 "천재 배우가 아니다 보니 죽기 살기로 했고, 요즘도 새로운 것을 끄집어내려고 나를 코너로 몰아붙인다"고 했다.

데뷔작은 2006년 뮤지컬 '라이온 킹' 한국 초연. 주술사 원숭이 라피키였다. "요즘 예술의전당에서 내한공연을 하고 있잖아요. 연습실 오가며 그 포스터를 볼 때마다 '언젠가 라피키로 무대에 선 모습을 아들에게 보여줘야지' 생각합니다." 차지연은 그동안 가장 좋았던 뮤지컬로 '레드북'을 꼽았다. "어릴 적부터 외모 콤플렉스가 심했어요. 얼굴 윤곽, 큰 키, 어깨 넓이… 내면이나 서정은 자신 있는데 외모 때문에 겁을 먹었죠. 안나와 함께 저도 성장한 것 같아요."

차지연은 성별을 가리지 않는 '젠더 프리(gender-free)' 캐스팅의 선두 주자. 단점마저 장점으로 승화시킨다. 무대에서 에너지를 발산하느냐 삼키느냐에 따라 관객이 느끼는 배우의 몸집이 달라진다. "젠더 프리요? '넌 그냥 여배우가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지닌 배우'(연출가 이지나)라는 격려에 용기를 얻었어요. '광화문 연가' '아마데우스' 등에서 남성 배역에 도전했는데 섬세한 여성성 외에 파워풀한 남성성까지 표현할 수 있더라고요. 이제 목표가 생겼어요. 죽기 전에 '지킬 앤 하이드'는 꼭 해보려고요!"

귀를 의심했다. 다음 사냥감이 지킬·하이드라고? '차지킬(차지연+지킬)'이 '지금 이 순간'을 부르는 장면을 상상했다. 기고자 : 박돈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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