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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르신들 '자녀 납치' 전화에 속아
거액 인출하며 ＂집 수리＂ ＂병원비＂
은행원, 전화번호까지 살펴봐

경남 김해의 한 은행원이 기지를 발휘해 40분 새 두 차례나 노인들의 보이스피싱 피해를 막아냈다. 두 노인은 모두 "자녀가 납치됐다"는 말에 속아 알뜰히 모은 돈을 몽땅 뺏길 뻔했다.

지난 27일 오전 10시쯤 김해시 한림농협 신천점에 근무하는 김주란(52)씨 창구 앞으로 한 70대 할머니가 다가왔다. 적금 통장을 건넨 할머니는 "해약해달라"고 말했다. 할머니 통장엔 2000만원이 들어 있었고, 내년 3월이 만기였다. 김씨는 "조금만 더 넣으면 만기인데 아깝다. 돈을 어디에 쓰실 거냐"고 물었다. 할머니는 "집 수리 비용"이라고 했다. 계좌 이체나, 수표 인출을 권하는 김씨의 말에 할머니는 "2000만원 전부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이상하게 여긴 김씨는 고액 현금 인출·이체 시 작성하는 '금융사기 예방 진단표'를 건네고 대화를 이어가며 시간을 끌었다. "집을 왜 고치냐" "집 수리 비용은 얼마나 들었나"는 김씨의 잇따른 질문에 할머니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했다. 결국 할머니는 "아들을 납치했으니 5000만원을 달라"는 협박 전화를 받고 은행을 찾았다고 털어놓았다. 할머니는 김씨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을 통해 상황 설명을 듣고 나서야 자신이 보이스피싱 표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약 40분쯤 뒤. 이번엔 한 80대 할아버지가 통장 2개를 들고 은행을 찾았다. 통장엔 기초연금과 생활비·용돈 등을 아껴가며 모은 돈 920만원이 들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병원비에 쓴다"며 전액 현금 인출을 요구했다. 역시 이를 이상하게 생각한 김씨는 할아버지 휴대전화를 건네받아 살펴봤다. 저장되지 않은 낯선 번호의 상대와 최근 통화한 것이 확인됐다. "이 사람은 누구냐"는 김씨 질문에 할아버지는 "모른다"고 했다. 김씨가 계속 이것 저것 묻자 결국 할아버지도 "아들이 납치됐다는 협박 전화를 받았다"고 털어놨고, 소중한 재산을 지킬 수 있었다.

김씨는 "농촌 어르신들이 생활비·용돈을 아껴가며 하나둘 모은 돈을 지켜드릴 수 있어 다행"이라고 했다. 김해 서부경찰서는 30일 보이스피싱 범죄를 예방한 김씨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기고자 : 김해=김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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