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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조선일보 사람들] (53) 창간초 기자 현철

1921년 1월부터 77회 매일 실어
연극통해 민중 계몽 취지로

日메이지大 유학중 연극 활동
1920년 ‘개벽’에 ‘햄릿’ 완역연재

예술학원·조선배우학교 등 설립
본격적으로 연극인 양성도

일본 유학생 출신 현철(玄哲·1891 ~1965)은 1921년 초 도발적 주장을 담은 글을 기고했다. ‘조선엔 연극도, 극장도 없다’는 선언이었다. 판소리나 가면극 같은 전통극은 물론 일본에서 들어와 성행하던 신파극까지 부정했다. 특히 신파극은 연극에 대한 모독으로 여길 만큼 철저히 배격했다. 현철은 연극이 단순한 유희가 아니라 민족의 자생력을 키우는 최선의 방편이라고 믿었다. 연극계에선 그를 ‘신극(新劇)의 개척자’로 평가한다.

현철이 쓴 칼럼은 ‘현당극담’(玄堂劇談·1월 24일~4월 21일·총 77회)이었다. 현당(玄堂)은 현철의 호로 ‘현당극담’은 현철이 쓰는 연극론이라는 뜻이다. 현철은 본지 창간 초기, 석달간 매일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의 칼럼을 썼다. 4쪽짜리 신문을 발행하던 시대였다. 연극을 통해 근대에 뒤쳐진 민중을 계몽한다는 취지에 편집진이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부산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현철은 어린 시절 서당식 한문 공부를 하다 일본 유학을 떠났다. 메이지대 법과 재학 중인 1913년 일본 신극의 선구자 시마무라 호게츠(島村抱月)가 이끌던 극단 예술좌(藝術座) 부속 연극학교에 들어가 4년간 연극을 공부했다. 톨스토이, 투르게네프, 체홉, 입센 작품에 단역 배우로 출연하면서 리얼리즘 연극을 배웠다. 1917년 귀국했다가 상해로 건너가 중국 연극의 흐름을 익힌 뒤 천도교측이 1920년 6월 창간한 월간지 ‘개벽’ 문예(학예)부장으로 들어갔다. 현철은 셰익스피어 희곡을 처음으로 완역한 ‘하믈레트’를 ‘개벽’에 연재했다. 1921년 5월(11호)부터 1922년 12월(30호)까지 19회나 된다. ‘하믈레트’는 1923년 박문서관에서 단행본으로도 나왔다.

현철이 입사한 것은 선우일 편집국장(1921년 4월~1924년) 시절로 알려져있다. 정확한 입사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현철이 1923년 10월까지 ‘개벽’에서 일했고, 선우일 국장이 3년간 재임했다는 것으로 보아 1923년말~1924년인 듯하다. 현철은 1959년 자신이 발행 겸 편집을 맡은 ‘한국인물록’에 조선일보 사회부장, 학예부장을 지냈다고 썼다.

빙허 현진건(1900~1943)이 오촌 조카다. 1920년 11월 입사한 현진건은 입사 다음달부터 투르게네프의 ‘첫사랑’을 번역한 ‘초련’과 투르게네프 소설을 번역한 ‘부운’을 잇따라 1면에 연재했고, 이어 영국 작가 마리 코렐리의 ‘복수’를 번안한 ‘백발’을 4면에 연재했다.

현철은 1920년 2월 서울 서대문에 ‘예술학원’을 설립, 연극인 양성에 나섰지만 1년도 안돼 내분으로 문을 닫았다. 1923년 10월 동국문화협회를 세우고 이듬해 12월 조선배우학교를 설립했다. 연극계에선 조선배우학교를 ‘연극 사상 최초의 본격적인 연극 교육기관’으로 기억한다. 배우학교 역시 배역 문제로 내분을 겪으면서 문을 닫았다. 1927년 조선극장을 맡아 운영했지만 몇 달만에 관뒀다. 실패의 연속이었다. 연극계를 떠난 현철은 1930년대 화장품 제조에도 뛰어들었다 손을 뗐다. 해방 후 배우학원을 열었으나 흐지부지됐다.

1964년 연극 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서울시 문화상을 받았다. 말년엔 경기도 양주군 별내면에서 쓸쓸한 노후를 보냈다. 유민명 단국대 명예교수는 그의 삶을 ‘투철한 연구자의식으로 무장되어 한국 근대극을 일으키기 위한 도전과 좌절의 연속’이라고 평가한다.  본문자수:1454   표/그림/사진 유무: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