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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조선일보 사람들] (31) ‘민족의 원로’ 월남 이상재

“조선일보가 유력 기관 될 표징”
서재필, 이상재 사장 취임에 편지

지역·계층·이념 넘어 신망 받아
1924년 74세때 본지 사장에 추대

좌우협동전선 신간회 창립 주역
발족 다음달 별세… 첫 社會葬으로

‘조선일보가 우리 민족의 원로인 이상재 노인과 김동성 등 제씨의 협동 조직한 새 기관으로 넘어갔다는 말을 듣고 이 노소협동한 조직, 그것이 조선일보가 장래 조선 민중의 유력한 기관이 될 표징인 줄로 알았노라.’(본지 1924년 11월 23일자)

구한말 계몽운동가 서재필이 월남(月南) 이상재(1850~1927)가 조선일보 사장이 됐다는 소식을 듣고 본지에 편지를 보내왔다. 서재필은 독립협회를 함께 하던 월남을 존경하고 신뢰했다. 그런 월남이 이끄는 조선일보가 조선 민중의 대변지가 되리라 기대한 것이다.

구한말 주미 외교관으로, 독립협회 주역으로 활약한 이상재는 지역과 계층, 이념을 넘어 존경받는 어른이었다. 조선교육협회와 조선민립대학기성회, 소년척후단(보이스카웃) 조선총연맹 등 단체가 생길 때마다 회장을 맡았다. 1924년 9월 본지를 인수한 독립운동가 신석우가 월남을 사장으로 추대한 것도 그만큼 신망있는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일흔 넷 월남은 처음엔 고사했다. 신석우의 끈질긴 설득 끝에 ‘동아일보와 서로 싸우지 말고 합심해서 민족의 계몽운동에 힘써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수락했다.

월남은 국내 첫 조석간 발행, 첫 네컷 시사만화 ‘멍텅구리’ 연재 등 본지 혁신을 이끌었다. 특히 1924년 말 박헌영, 김단야, 임원근, 조봉암, 김재봉 등 사회주의 인물들이 대거 입사했을 때, 그의 지도력이 빛을 발했다. 지면이 좌편향으로 치우치지 않도록 중심을 잡는 역할을 했다. 1925년 9월 사설 ‘조선과 노국(露國)과의 정치적 관계’가 빌미가 돼 총독부로부터 무기정간 당했을 때도 존재감이 돋보였다. 일제는 정간을 해제하는 조건으로 사회주의 세력을 내보낼 것을 요구했다. 당시 기자 17명이 해고됐는데 월남의 중재와 설득이 없었다면 내분이 심각했을 것이다.

1927년 2월 좌우협동전선 신간회 창립에도 월남의 공이 컸다.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 모두 주도권을 잡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였다. 병석에 누운 월남은 극구 회장 취임을 사양했다. 하지만 민족을 위해 나서 달라는 설득에 손을 들었다. 좌우 양쪽이 두루 인정하는 월남이 없었다면 신간회는 발족조차 어려웠다. 월남은 ‘하나의 민족에 있어서도 주의(主義)가 서로 달라서 다른 민족으로 간주하거나 원수나 적으로 잘못 간주하는 편견이 자주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서 ‘무슨 주의든지 편집한 국견(局見)을 버리고 우리 민족부터 세계 사회까지 구원하는 대사업을 희망’한다는 소신을 밝혀왔다.

월남은 신간회 발족 다음달인 1927년 3월 25일 본사 사장에서 물러난지 나흘만에 별세했다. ‘나는 가오, 일 많이 하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장례식은 역사상 첫 사회장으로 치러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민족의 단결을 바라던 월남의 장례식이 통합의 계기가 된 것이다.

본지는 3월 30일자 석간부터 장례식 당일인 4월 7일까지 9회에 걸쳐 ‘월남선생 사회장의(社會葬儀)’ 기사를 실었다. 좌옹 윤치호는 이상재에 대한 세인의 평가를 일기에 남겼다. ‘조선인은 이완용 장례식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일본인 친구들은 이 차이들을 깨닫고 똑바로 행동해야 한다. 이완용의 유해를 남대문 역으로 운구했을 때 그 뒤를 따르는 조선인은 아무도 없었다. 반면에 서울 전체가 진심어린 애도로 돈도 없고 관직도 없이 죽은 노인을 예우했다.’

정부는 1962년 월남에게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월남 손자 이홍직은 1930년 공채1기로 입사, 기자로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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