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이신문보기

양지혜 기자 ‘美애리조나주립大 연수기’

‘월터 크롱카이트 스쿨’서 공부
세미나·토론·봉사활동 등 빡빡

각계 여성리더 다채롭게 만나
기자로서 순도 100% 자부심 느껴

풀브라이트 험프리 펠로우십 연수를 1년간 마치고 지난주 귀국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국제협력 증진에 심혈을 기울였던 휴버트 험프리 전 부통령(린든 B. 존슨 대통령 2기 행정부 재임)의 뜻을 기려 미국 국무부가 1978년 창설한 프로그램으로 한국 언론인은 2021년부터 참여하고 있습니다. 1기에 이현택 사우(산업부)가 선발됐고, 제가 2기로 다녀왔습니다. 이 사우가 많은 노하우를 공유해 준 덕분에 적응하기가 쉬웠습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국무부에 의해 1년간 일정이 촘촘히 짜여져 있는 것입니다. 재량으로 시간을 조절해서 여행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다른 연수 프로그램과는 많이 다릅니다. 미 대륙 한복판에 있는 캔자스대학교(〈오즈의 마법사〉 배경인 시골로, 황량함이 매력입니다)에서 두달간 영어 집중 교육을 받고, 나머지 10개월은 분야별로 배치되는 호스트 캠퍼스에서 공부합니다. 가령 건축은 MIT, 농업은 코넬대가 맡는데 언론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 있는 애리조나주립대(ASU)의 월터 크롱카이트 저널리즘 스쿨이 담당합니다. 세미나와 토론 수업이 하루 걸러 있고, 봉사활동과 인턴십도 의무적으로 해야합니다. 반드시 공개 발언을 해야하는 상황에 계속 노출되기 때문에, 영어 말하기 실력 기르기에는 더없이 좋은 환경입니다.

저의 연수주제는 여성 리더십 제고 전략이었습니다. 미국에선 어느 분야든 롤모델로 삼을 고위직 여성이 많을 것 같았는데, 실제로 그랬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과 워싱턴포스트가 근래 잇따라 최초의 여성 편집국장을 배출한 것은 많이들 아실 겁니다. 뿐만 아니라 마초이즘이 원초적으로 군림할 것 같은 남성 스포츠 영역에서조차 여성들이 한 자리씩 차지해 놀랐습니다. 북미 프로 리그의 재무나 마케팅 총괄직을 맡은 여성은 흔했고 인기 절정의 NFL이나 NBA 구단 사장직도 여자가 맡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데이터 분석가도 확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제가 인턴으로 일했던 메이저리그 구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마케팅·데이터분석팀도 팀원의 70%가 여성이었고 총괄 책임자도 여자였습니다. 그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과감한 추진력으로 구단 내 신망이 높았는데 “기존의 문법에서 탈피해서 많은 것들을 혁신해야 하는 디지털 시대가 분야를 막론하고 여성들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기회로 작용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동고동락한 펠로우들에게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저를 포함해 13명의 언론인이 ASU에서 수학했는데, 그 중 8명이 여자였습니다. 서아프리카 가나부터 극동의 사할린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이름 날리며 전인미답 경력을 쌓은 여기자들이었는데 가끔은 싸움닭처럼 보일만큼 매사 거침없이 질문하는 태도가 몸에 밴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억압당했던 옛 소련의 상황을 생생히 기억하는 러시아·벨라루스·라트비아 펠로우들이 “질문할 권리는 성스러운 권리이며 기자가 세상에서 제일 멋진 직업”이라고 눈을 빛낼 때는 저도 덩달아 순도 100% 자부심을 느꼈습니다.

한없는 자긍심으로 일에 몰두하고, 편견은 유머로 이겨내며 자신만의 발자취를 만들어온 여성 리더들을 다채롭게 만나보면서 제 내면도 에너지로 차올랐습니다. 피닉스의 불타는 태양열로 펄펄 달궈지기까지한 이 에너지를 앞으로 편집국에서 아낌없이 쓰겠습니다. 연수 기회를 주신 회사와 한·미 양국 정부에 감사드립니다.
 본문자수:1377   표/그림/사진 유무: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