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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읽는 조선일보 사람들] (52) ‘국경의 밤’ 시인 김동환

1929년 일제시대 최대규모 파업
원산 현장에서 노동자 밀착취재

유명작가지만 사회부기자로 뛰어
틈틈이 詩作… ‘봄이 오면’ 게재

‘삼천리’ 창간 대표잡지로 키워
“눈물 많은 애국시인” 불리기도

1929 년 초 원산 총파업 현장에 본지 기자가 급파됐다. 일본인 관리자의 조선인 노동자 학대가 빌미가 돼 일어난 원산 총파업은 1월 13일부터 3개월간 지속된 일제시대 최대 규모 파업이다. ‘만여석의 양식까지 준비하여 두고 1만여명의 파업단원의 생활을 벌써 달포동안이나 아무 근심없이 지탱하여 나왔을 뿐아니라….’(‘원산 노동연합회 진용 종횡기’, 본지 1929년 2월 12일)

영국계 제유공장에서 시작된 파업은 부두 노동자를 비롯, 제면, 인쇄, 양복 노동자 등 원산 지역 노동자들의 총파업으로 번졌다. 파업 원인과 과정, 주도 단체인 원산노동연합회와 주요 간부들을 취재한 르포 기사는 2월 22일까지 8차례에 걸쳐 실렸다. 취재기자는 파인(巴人) 김동환(1901~?)이었다.

파인은 스물넷이던 1925년 장편 서사시 ‘국경의 밤’을 발표해 이광수, 주요한과 함께 근대 문학사에 굵직한 자취를 남긴 문인이다. 하지만 그는 신문기자로 또 잡지출판인으로 맹활약한 언론인이었다.

일본 동양대학에 다니다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귀국한 파인은 동아일보, 시대일보, 중외일보를 거쳐 1927년 본지로 옮겼다. 파인은 유명 작가였지만 사회부 기자로 뛰었다. 종로경찰서 담당으로 ‘신간회 민중대회’ 같은 사건 기사를 많이 썼다.

취재 틈틈이 시작(詩作)도 이어갔다. ‘봄이 오면/산에 들에/진달래 피네’로 시작하는 시 ‘봄이 오면’은 나물 따러 나온 처녀를 그린 안석주의 삽화와 함께 본지 1928년 1월10일자에 실렸다. 이 시는 1931년 평양 숭실중에 다니던 열여덟살 김동진이 작곡한 곡조를 붙여 명곡으로 남았다.

본사 재직중인 1929년 7월 월간지 ‘삼천리’를 창간, 일제시대 대표 잡지로 키웠다. 그해 말 본사를 퇴직하고 잡지에 전념, 편집자 겸 발행인, 취재 기자 등 1인 다역을 했다.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호기심을 충족시키면서도 안재홍·한용운·김동인·송진우 등 1급 필자를 섭외해 잡지의 수준을 유지했다. ‘삼천리’는 최고 1만2000부를 발행할 만큼 인기를 누렸다. 김동환은 ‘문화건설의 행진의 선두에서 뚜렷한 그림자를 지으면서 움직이는 한 사람의 아방가르드의 거자(巨姿)를 가지고 있다’(김기림 ‘김동환론’, 동광35, 1932,7)는 평가를 받았다.

동료 기자이자 만문만화가였던 안석주는 파인을 ‘유달리 감격에 심하고 눈물이 많은 애국시인’이라고 했다. 그래서 ‘감격 시인’이란 별명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일제 압박으로 1942년 잡지 이름을 ‘삼천리’에서 ‘대동아’로 바꾸는 등 일제에 협력한 혐의도 있다. 이 때문에 1949년 반민특위에 회부돼 공민권 정지 5년을 받았으나 6.25때 납북됐다. 파인은 본지 기자 출신이자 ‘삼천리’ 잡지 편집자였던 최정희와 재혼했다. 그 사이에서 낳은 두 딸 김지원(2013년 작고), 김채원(78) 모두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다.  본문자수:1255   표/그림/사진 유무:있음